이혼도 안했고, 별거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배우자와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 불행한 동거를 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딱히 바람을 피웠다거나 폭행이 있다는 등 뚜렷한 귀책사유가 있지도 않으며, 그저 남들에게는 부부라는 외형만을 보여주고 서로 참고 사는 것입니다. 금번 칼럼에서는 이와 같이 “가정내 별거”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이들의 혼인생활이 이혼과 관련하여 어떻게 취급될 수 있는지 다뤄보겠습니다.
우리나라 법원은 부부공동관계의 실질이 전혀 없다면 일응 이혼을 시켜주는 입장이기도 하다.
이런 부부가 있었습니다. 혼인을 하고 짧은 신혼기간 이후 성격차이로 별거를 시작했는데 그 별거기간이 10년이 넘게 이어져 온 것입니다. 부부 양당사자의 속마음은 서로가 이혼을 원하고 있었지만 굳이 누가 먼저 이혼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뿐입니다. 최근 부산가정법원
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원고가 제기한 이혼청구는 인용을 하면서 그 이유는 혼인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이 쌍방 모두에게 있다고 본다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특히 ‘책임’을 거론하며 이를 양측 모두에게 전가하였는데, 법원의 이러한 판결을 한 것은 아직까지 대법원의 입장인 유책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보입니다(유책주의와 파탄주의에 관하여는 추후 칼럼의 주제로 다뤄볼 예정이다).
그런데 위 사안과 같이 장기간의 별거가 아니라 장기간 가정내 별거의 경우에도 이혼을 시켜주어야 하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매일 매일이 신경전과 도발, 별거보다 잔인한 가정내 별거
가정내 별거는 일본에서 먼저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가정내 별거를 정의하면 상대방과 같이 살아도 매일 싸움만 하고, 상대방에 대한 경멸만 늘어가는 상황 하에서 이혼은 하고 싶지만 자녀들이 어리다거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이혼을 결단하지 못하는 부부들이 하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내 별거를 하는 부부들의 특징은 각방을 쓰는 것을 포함하여 서로가 서로의 살림을 챙겨주지 않고 얼굴도 최대한 보지 않는 등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당신은 남이니까, 내 물건에 손대지 마.
가정내 별거를 하는 부부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좋게 말해서 관심이 없다는 것이지 실제는 서로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무시무시해서 부부 중 일방이 실수 하나라도 하면 잡아먹을 듯이 화를 내거나 욕설을 합니다.
부부간에 사용하는 욕실용품도 달라서 남편이 사용하는 샴푸나 치약이 떨어지면 자기 것은 자기가 사와야지 절대 아내가 챙겨주지 않습니다. 남편은 와이셔츠도 세탁소에 맡겨야 하고 당연히 저녁식사는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오거나 혼자 차려 먹고 혼자 설거지까지 해야 합니다. 남편이 어쩌다가 물을 마시고 컵을 설거지 해놓지 않으면 남편이 치울 때까지 그 컵은 때가 잔뜩 끼도록 식탁위에 놓여 있습니다. 만일 눈치 없이 시댁식구들이라도 방문을 하게 되면 아내는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아프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집을 나가서 호텔에서 잡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더 큰 스트레스를 받거나 집이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고는 밖으로 돌게 됩니다.
가정내 별거의 경우에도 혼인파탄이라고 보아 적극적으로 이혼을 시켜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혼청구와 관련하여 유책주의와 파탄주의가 대립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대법원의 입장은 파탄주의가 아니라 책임의 소재를 가려 ‘유책배우자는 이혼청구를 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에 있습니다. 유책주의의 입장에서 혼인관계의 실질이 사라진 부부관계를 이혼시키려니 가정내 별거의 문제를 다루기가 어려워집니다. 즉 물리적으로 다른 곳에 각자 주소를 두고 사는 별거의 형태가 아니라, 그 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내온 가정내 별거의 상황에서 이혼을 청구하였는데, 상대방이 오기나 보복의 감정으로 한 집에서 생활을 해왔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버틸 경우, 법원에서의 재판은 굳이 과거에 있었던 사소한 잘잘못까지 모두 드러내면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공격적인 이혼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는 없는 구조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가정내 별거를 이유로 소송을 진행하려면 사건 초기부터 착실한 준비가 필요하다.
상술했듯이 가정내 별거를 이유로 한 이혼청구는 실제 별거보다 부부 서로에게 더 힘든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부부가 한 지붕아래서 함께 살았다는 이유로 인하여 혼인관계가 파탄나 있었음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물론 법원에서도 근래 들어서는 심심치 않게 접하는 사건들이므로 해당 부부의 불행한 혼인생활을 대략적으로 짐작하지만, 논리적인 주장과 명확한 증거들로 법원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사건의 진행이 꼬여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정내 별거의 경우에는 성공적인 이혼을 위하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법률사무소 차율
대표변호사 이경호, 고형석, 이수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