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청 개입 어려운 민간사업 … 정보 제공으로 피해예방
A씨는 시장을 갔다 오다가 시내 번화가에 있는 아파트 모델 하우스를 봤다. 한 여성이 다가와 '반값 아파트'라며 모델하우스를 방문하면 주방용품을 제공하겠다고 유혹했다. A씨는 막연히 결혼을 앞둔 자녀에게 아파트 하나라도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델하우스에 들어가 상담직원을 만나니 "선착순 분양으로 몇 채 남지 않았다. 오늘 가입해야 원하는 동과 호수를 선점할 수 있다"고 말하자 다른 사람이 아파트를 채갈까 덜컥 겁이 났다. 상담직원이 "계약금(조합원분담금)은 나중에 내도 된다"는 말을 하자 A씨는 계약서와 주방용품을 들고 모델하우스를 나섰다.
조합 업무대행사 관계자들이 검찰에 송치된 서울 구로구의 한 지역주택조합 주택홍보관. 외벽에는 낙서가 되어 있고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다. 사진 박광철 기자 |
지역주택조합에 충동적으로 계약한 일반적인 사례다.
지역주택조합은 무주택자들이 저렴하게 내집 마련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제도다. 업계에서는 '공동구매'로 불리고 일부 지역에서 입주까지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사업이 장기화되면서 각종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의 지역주택조합에 대한 몰이해가 피해자를 양산한다고 지적한다.
내일신문은 실제 지역주택조합과 관련해 조합원들의 분담금을 되찾아준 경험이 있는 법무법인 이평의 공락준 변호사와 차율법률사무소의 이경호 대표변호사의 조언을 얻어 지역주택조합 가입전 점검사항 등을 정리했다.
◆일선 구청에 문의 쇄도 = 공 변호사와 이 변호사는 가장 먼저 "가입전 관련 지자체에 문의하는 것이 기본이자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 지역주택조합으로 인한 분쟁이 커지자 일선 지자체들은 방관에서 적극적 계도로 입장을 바꿨다. 지자체로서는 사업 인허가밖에 할 수 없지만 주민들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주로 사업예정지 주변에 현수막 등 홍보물을 걸고 유의사항을 안내한다. 문의사항은 구청으로 전화하라는 식이다. 실제 이 홍보전은 지역주택조합의 허위·과장광고를 줄이고, 조합원이나 조합 가입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서울 은평구 주택과 관계자는 "지역주택조합에 유의하라는 현수막을 붙이고 나니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면서 "30%는 이미 가입한 경우, 70%는 가입을 고민하는 경우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주택조합의 업무대행업자인 최 모씨는 "지역주택조합이 남발되면서 사업가능성이 높은 사업장도 도매금으로 오해받고 있다"며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하려면 미리 관할 구청에 지역주택조합이 성공한 사례가 있는지, 착공예정일이 언제인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당 구청이 지역주택조합사업의 준공 허가를 내준 경우가 있다면 그 경험상 다른 사업장에서 분쟁을 줄일 수 있고, 조합원들의 민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성공한 사업장이 없다면 그 정보만으로 조합원들이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다.
◆공공 개입 못하는 민간사업 = 지역주택조합사업은 일반 재건축이나 재개발 등 공적인 성격의 도시정비사업과 달리 민간사업이다. 관청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의미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의 경우 조합원들이 관청에 민원을 제기하면 관청이 수습할 수 있지만 지역주택사업에는 관청이 개입할 수 없다.
특히 조합추진위 또는 조합설립추진위의 경우 비법인사단이다. 비법인사단은 법인격이 없다. 회사가 아니어서 설립등기도 하지 않은 상태라 각종 확인서나 보증서 등 법적 요건을 갖추지 않은 경우다. 조합 총회 등을 거쳐야만 법적구속력을 가진다. 이 때문에 법보다 계약서가 우선시 된다.
하지만 대부분이 지자체가 관리·감독하는 재건축·재개발사업과 같다고 오해를 한다. 뒤늦게 구청 등에 찾아가 항의를 해도 소용이 없다.
이 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담당직원의 명함, 홍보물, 계약시 대화 내용 녹음, 계약서, 수기로 설명해 준 모든 자료를 받아 보관해야 만일에 벌어질 법적 분쟁을 대비할 수 있다.
◆토지확보율이 중요 = 일반 주택청약도 수시로 제도가 변경 되기 때문에 충분한 공부가 필요하다.
지역주택조합 역시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조합은 사업 희망지에 대한 토지를 사들여야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
조합이나 업무대행사가 대규모 자본력이 없는 경우 토지 매입을 한꺼번에 하지 못하고, 토지주들이 값을 올릴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이유로 사업이 늦어진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조합이 사업부지 내에 토지를 얼마나 확보했는지다. 토지 확보를 많이 할 수록 사업 속도가 빠라지고 불확실성도 해소된다. 그만큼 허위 과장 광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토지확보율이다.
조합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토지확보율과 토지매매계약 체결 비율, 토지사용승낙서(동의서) 징구 비율 등이 나오는데, 승낙서는 "사업이 시작되면 땅을 팔겠다"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계약도 맺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일부 조합 측은 "주민 80%가 동의서를 써줬다"고 홍보한다.
이러한 승낙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주민이 땅을 내주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조합이 이러한 승락서를 가지고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거나 토지를 확보했다고 홍보한다. 법원은 이러한 과장에 대해 기망행위로 보고 있다. 구체적 데이터를 확인하지 않고 조합에 가입했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본인 혼자 부담해야 한다.
오승완 · 이제형 기자 osw@naeil.com